영화 '터널'

터널 안 : 악착같이 살아남는 하정우의 모노 재난 드라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자동차 대리점 영업 과장 정수(하정우)는 운전 중 지나가던 터널의 붕괴로 홀로 갇힙니다. 금방 구조될 줄 알았던 정수는 물 2병과 딸의 생일 축하를 위해 샀던 케이크만으로 생존해 나가야 했습니다. 간신히 잡히는 휴대폰의 신호로 아내 세현과 119 구조대장 대경과 연락했던 정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힘겨워졌습니다. 단순히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을 떠나, 꽉 막힌 붕괴된 터널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지내야 했기에 그 와중에 즐거움이라도 찾으려는 듯 영화에는 하정우 특유의 유머가 가미됩니다. 터널 안에 생존했던 또 다른 여인 미나를 만났지만 이미 무거운 돌에 눌려 금방 사망했고, 또 다른 생물체인 강아지와 함께 터널 사이로 흘러나오는 물방울을 받아 생활을 버텨나갑니다.

휴대폰이 살아있을 때에는 정의롭고 책임감 있는 구조대장 대경과 사랑하는 아내 세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희망을 가졌지만, 휴대폰이 꺼진 이후로는 어두운 터널 안에서 고독과 싸워야 했습니다. 물이 없으면 오줌을 먹기도 했습니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워셔액을 사용했습니다.

유일하게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고장 난 차에서 간신히 들려오는 라디오였습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이후 4주가 넘게 지나 정신력만으로 버티고 있던 정수는 라디오 방송에서 세현이 남기는 마지막 편지를 듣고 절망에 빠집니다. 더 이상 누구도 구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수는 악착같이 바깥 통로를 찾으려 애를 쓰지만, 붕괴된 터널이 더 붕괴하는 악조건이 발생합니다. 붕괴 중에도 죽기 살기로 모든 신호를 보내려 클락션을 계속 울리는 정수는 사고 발생 35일 뒤 구조대장 대경에게 발견되어 터널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터널 밖 : 재난과 구조를 바라보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의 현실

터널의 붕괴로 갇혀있던 유일한 생존자인 정수는 대한민국 사회 모두가 구조되길 바라는 대상이었습니다. 터널의 부실공사로 건설업계가 크게 비난받았고, 정부 관료들은 앞다투어 재난구조현장을 방문하여 정수를 구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7일, 14일, 21일, 28일...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수많은 인력과 세금, 그리고 다른 공사현장의 손해 등 정수를 구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대가가 가혹하다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점점 구조지원인력은 사라졌고 터널 사고는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 갔습니다. 세현은 본인의 남편만을 위해서 타인을 죽게 하고 수많은 인적, 물적,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는 고집 있는 아내로 낙인찍힙니다. 그저 남편이 생존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간절한 마음만으로 구조되기만을 기다렸던 세현은 여론에 밀려 남편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제2터널 공사 재개에 동의합니다.

정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구조 방법을 모색했던 대경은 정수의 클락션 소리로 그가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구조대와 정부, 그리고 언론들은 다시 정수의 구조작업에 집중합니다.

35일 동안 물 2병과 케이크만으로 홀로 먼지 속에서 버텼던 정수가 구조대로부터 구조되어 나올 때 국민들과 언론, 그리고 정부 관료들은 그의 극적인 생존에 감동하고 인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언론은 그의 생존에 기뻐하는 한편, 35일간의 구조작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정수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여 제2터널 공사를 동의한 국민의 65%가 살아 돌아온 정수의 스토리에 갑자기 감동하게 됩니다. 혈세 낭비로 지원을 줄이고 공사 재개에 박차를 가했던 관료들은 정부의 노력으로 정수를 살릴 수 있었다며 생명의 존엄성을 이야기합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음이었던 사람은 정수와 그의 가족, 그리고 대경뿐이었습니다.

영화 '터널'

 

결국 인간은 빠른 결론을 좋아한다 : 결말이 좋든 안 좋든

사람들은 사고를 바라볼 때 1차원적인 감정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사건을 분석하고 예상하면서 본인의 생각이 맞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사건의 진행이 더디고 많이 길어지게 되면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본인이 생각했던 결과가 희망이든 절망이든 빨리 나와야 '아, 맞았구나' 또는 '아, 틀렸구나'라고 리액션을 할 텐데 어떠한 결론도 나오지 않는다면 모두가 담합하여 결론을 절망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표현합니다.

터널 밖의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1차원적인 감정은 모두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고의 본질은 왜곡되기 시작했고, 인내심을 버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절망이었지만 기적적으로 구조된 정수의 생존은 또다시 1차원적인 감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무섭게도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재난영화인 것처럼 보이는 영화 '터널'은 재난 사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사회 풍자 영화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했습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터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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