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이란?
초(超) 인플레이션이라고도 불리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단기간에 극단적으로 빠르게 상승하여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수준을 말합니다. 보통 전쟁이나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재화와 서비스의 희소성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가격이 상승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계속해서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발행하는 현상입니다.
베네수엘라 : 돈 대신 금으로 결제하는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인해 돈 대신 금으로 밥값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화폐의 가치가 휴지조각이 되어 법정 화폐인 볼리바르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투메레모 마을에서 식당에서 두 명이 점심을 먹으면 0.25g의 금을 지급하면 되고, 호텔에서 1박을 하면 금 0.5g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화폐에 익숙한 우리는 저 정도 금의 무게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주민들은 이미 금 거래에 익숙해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 교환되는 금을 보면서 무게도 재지 않습니다. 눈짐작으로 3개의 작은 금 조각이 있으면 0.125g 수준이고 이를 미국 달러로 계산하면 약 5달러 수준이라고 합니다.
베네수엘라의 물가 상승률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2017년 438.1%, 2018년 65,374%, 2019년 19,906%, 2020년 2,360%에 다다릅니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사례와 비교하자면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조금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물가가 많이 올랐을까?
베네수엘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전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닌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20년 넘게 시행한 사회주의 정책과 계획 경제, 그리고 복지 포퓰리즘으로 인해 발생한 현상입니다. 베네수엘라의 화폐 위기를 크게 네 가지 원인으로 분석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석유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을 정도로 자원 부국입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전체 수출의 96%가 석유이고, 정부 재정 수입의 절반과 GDP의 3분의 1이 석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유가가 상승할 때에는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지만 유가가 하락할 때 경제 전체가 악화될 수 있는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석유가 아닌 대체 자원을 발굴하거나, 제조업과 같은 전통 산업에서의 성장으로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또한 석유 관련 기업들을 대부분 국유화하면서 석유 생산성이 감소되었습니다. 하루에 300만 배럴 생산했던 과거와는 달리 2018년에는 140만 배럴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지나친 복지 포퓰리즘
22년 전 우고 차베스가 집권한 이후 무상교육과 의료 지원, 저소득층 보조금 지급 등과 같은 복지 정책을 남발하면서 정부 재정 지출이 심각해졌습니다. 실업률과 빈곤율이 감소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면서 차베스 정권은 더 많은 복지 정책을 펼쳤고 모자란 재정은 미래의 석유 수익금을 담보로 정부가 차입함으로써 재정 지출을 더욱 늘렸습니다. 문제는 유가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하자 베네수엘라 경제가 휘청이기 시작했고 석유 의존도가 96%였던 베네수엘라는 아무런 방어막 없이 그대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 역시 화폐를 발행하여 재정 부담을 메꾸었고 이는 극단적인 물가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규제 위주의 계획 경제 정책
석유 산업을 포함하여 베네수엘라 주력 산업을 국유화하고 각종 가격을 통제했습니다. 2000년 이후에 석유산업과 통신 산업, 철강, 전력, 시멘트 산업 등 대부분의 산업이 국유화되었고 해당 산업의 전문가가 아닌 독재 정권의 측근이 수장으로 임명됨에 따라 생산성 감소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력 기업의 경우에는 2005년 이후 전기료를 동결시키면서 가격을 통제했고 2012년 총수익이 인건비의 3분의 2 정도 수준까지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사회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재산 수용 허용, 가격 인상을 근거로 기업의 자산을 몰수할 수 있는 법률이 헌법에 게재됨에 따라 이를 근거로 많은 기업을 수용하고 몰수하는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부정부패 남발
계획 경제 정책과 더불어 부정부패도 심해졌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 인식지수에서 베네수엘라는 언제나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국가기관인 외환 통제 위원회는 원유 수입 자금을 공식 환율로 계산하여 암시장에 달러를 유통하면서 불법 외환 거래 금액이 2012년 총 690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는 당시 GDP였던 331억 달러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여전히 해결 방법이 없는 베네수엘라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인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수년 동안 공식적인 물가 상승률을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2008년 1,000 대 1, 2018년 10만 대 1, 2021년 100만 대 1의 수준으로 화폐 개혁을 추진하는 노력을 했음에도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볼리바르는 교환 가치가 전혀 없는 휴지 조각 수준에 이르렀고 콜롬비아 접경 지역은 콜롬비아 페소가 화폐 역할을 하고, 브라질과 국경이 가까운 곳은 브라질 헤알화가 화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석유 자원이 풍부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복지 정책과 정부의 계획 경제 체제 확대에 따라 재정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 규제보다 기업이 활기를 가져서 투자를 증진하고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시장경제 체제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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