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형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수면
스페인에서는 시에스타라는 낮잠 문화가 있는 반면에, 미국과 영국,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낮잠이라는 단어는 눈살부터 찡그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점심을 먹은 뒤 졸음이 밀려오면 아침에 마셨던 커피를 또 한잔 마시면서 졸음과의 싸움을 이겨내려고 합니다.
일찍 일어나거나 늦잠을 자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의 시간관리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을 중심으로 생체 리듬이 돌아간다는 것을 잘 눈치채지 못합니다. 실제로 수면 시간 동안 우리의 뇌에서 많은 양의 인지 처리 과정이 발생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수면이 최근에 있었던 사건을 응고시키고, 기억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로 접한 기억은 처음엔 불안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섭에 저항력이 생기려면 신경을 강화하거나 응고시키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향후에 검색을 통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에 접근하다는 것은 각양각색의 신호를 통해 내용을 검색할 수 있다는 뜻과 같습니다.
수면은 기억을 조정하고 추출한 뒤 응고한다
며칠 전 중학교 친구 아담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저녁으로 먹은 양고기 요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나의 기억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아래의 질문은 모두 그 경험에 기반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양고기 요리를 먹었던 적이 있었나?', '내가 마지막으로 육류를 먹었던 적이 언제지?', '내가 친구 아담을 마지막으로 봤던 때가 언제였지?', '아담의 식사 예절이 좋았던가?', '중학교 친구 중에 아직 연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다르게 말하자면, 오랜 친구와 함께한 저녁식사와 같은 작은 사건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맥락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속성을 사건과 결부시키기 위해, 우리의 뇌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 경험을 분석한 뒤 여러 방식으로 정보를 추출하여 분류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억은 이미 존재하는 틀 속에서 통합되고, 뇌에 저장되어 있는 오랜 기억 속에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수면의 각 단계마다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기억을 기존 형태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 경험으로부터 의미와 특징을 추출해냅니다. 기억이 응고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처음 접한 신경회로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 이루어집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회로 속 활동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경험과 혼동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경회로를 미세하게 조정하고, 추출과 응고하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며칠 밤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한 뒤 이틀, 사흘 정도 잠을 설치면, 수개월 또는 수년 뒤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데 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면 중 일어나는 세 가지 정보처리 시스템
수면 중 일어나는 세 종류의 정보처리 시스템이 발동합니다. 첫 번째는 '통일화' 작업입니다. 하나의 경험에서 나온 각각의 요소를 통일된 개념으로 결합하는 과정입니다. 예컨대 새로운 수학 공식이나 법률을 익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잠을 자면서 통일화는 이런 것들을 이어진 것으로 묶는 역할을 합니다. 두 번째는 '동화'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다른 것들로 구성된 기존 뇌 구조에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단어를 배울 때 뇌는 그 단어를 통해 예문을 만들고, 그것이 기존 단어와 어떻게 조화가 되는지 돌려보며 실험합니다. 세 번째 과정은 '추상화'입니다. 이것은 숨겨진 규칙이 기억 속에 저장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가령 영어를 처음 배우는 외국인이 동사에 'ed'를 추가하면 과거형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에 'drink'라는 동사에 'ed'를 붙여 'drinked'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drink'의 과거형은 'drank'이지만, 뇌의 추상화 과정으로는 완벽하게 설명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저, 추상화 규칙이 특정 불규칙 동사에 적용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숙면을 취한 뒤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학습이 증진됩니다. 반면, 깨어 있는 채로 시간을 보냈을 경우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새로운 정보나 지식은 수면 중에 우리도 모르게 조용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끔 그것이 꿈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수면은 통찰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