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를 찾아라'란?

'월리를 찾아라'는 한때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퍼즐 도서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즐겨했던 기억이 납니다. 빨간색과 하얀색 가로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월리가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진 수많은 사람들과 사물 사이에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에는 월리가 빨간 옷을 입고 있기도 했습니다. 어린아이의 주의 필터는 그림을 재빨리 훑어보면서 빨간 물체, 즉 월리를 찾아냅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월리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빨간색이나 하얀색 단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 색이 다른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사람, 빨간색과 하얀색 줄무늬 티셔츠이기는 한데 세로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등장해 정신을 산만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시각계 신경구조를 이용한 책

'월리를 찾아라'는 영장류 시각계의 신경구조를 이용한 책입니다. 후두엽 안에 있는 시각피질이라는 뇌 영역에는 특정 색에만 반응하는 뉴런 집단이 있습니다. 어떤 집단은 파란색 물체에만 반응해서 전기신호를 보내고, 어떤 집단은 빨간색 물체에만 반응하기도 합니다. 또한, 세로 줄무늬가 아닌 가로 줄무늬에만 반응하는 뉴런 집단이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도, 넓은 줄무늬에 반응을 보이는 집단과 좁은 줄무늬에 반응을 보이는 집단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뉴런 집단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매우 좋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뉴런만 골라서 명령을 수행하게 하고, 나머지는 편하게 쉬고 있도록 명령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사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월리를 찾거나, 잃어버린 휴대폰 또는 지갑을 찾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찾는 물체에 대한 심상을 마음에 제시하면 시각피질 뉴런들은 해당 물체와 비슷한 것을 머릿속에서 상상하기 쉽게 도와줍니다. 만약 물체가 초록색이면 초록색에 민감한 뉴런들이 상상하는 데 동원됩니다. 이 뉴런들은 거기에 맞추어 자동으로 자신을 조율하고, 다른 뉴런들은 억제함으로써 탐색을 쉽게 만듭니다.

'월리를 찾아라'는 어린이들이 시각적 주의 필터를 설정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주어진 환경 속에서 더 미세한 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우리 조상들이 숲에서 동물을 추적하는 방법을 가르칠 때에도 아이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훈련시켰을 것입니다. 처음엔 눈에 잘 띄고 구별하기 쉬운 동물로 시작해서, 위장을 잘해서 주변 환경과 구별하기 까다로운 동물을 가려내는 것까지 훈련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청각 필터 시스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소리 속에서 특정 음이나 음색을 기대하면 청각 뉴런은 그 특성에 맞추어 선별적으로 조율됩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감각 뉴런들을 재조정할 때, 우리 뇌는 더 발전된 고위의 뇌 영역에서 기원하는 하향식 처리 과정을 가동합니다.

 

우리는 하향식 시스템으로 월리를 찾게 된다

전문가들이 본인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이러한 하향식 시스템입니다. 이 덕에 수중음파탐지기 운영자가 경계태세를 유지할 수 있고, 적절한 훈련만 받으면 핑 소리만 듣고도 적군의 잠수함을 화물선이나 고래와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지휘자가 수십 개의 악기가 연주되는 순간에도 하나의 악기 소리만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건물 밖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 누군가 대화를 하는 소리, 키보드 소리, TV 소리 등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글에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이유는 모두 하향식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월리를 찾아라'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 시각계를 산만하게 만드는 수많은 인파와 물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향식 시스템이라는 효과적인 주의 필터를 통해서 빨간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월리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을 걸러내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왜 효과적인 주의 필터 시스템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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